재미한국과학기술자협회 (당시 KSEA의 한글 명칭)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KOFST) 공동 주최로 과학기술종합심포지움이 1974년 7월 29일부터 8월 2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8 분과의 심포지움과 11 분과의 학술논문 세션이 있었고, 발표된 총 102편의 논문들은 KSEA 측에서 81편과 한국 측에서 21편으로 구성되었다. 과총회장 (김윤기)과 KSEA 회장 (함인영)이 공동대회장으로 그리고 각각의 심포지움과 학술논문 세션의 chair는 KSEA 측에서 1명과 한국 측에서 1명으로 조직되었다.
프로그램에 나와있는 심포지움 목적은 “국내외 과학기술자 상호 유대강화와 최신 과학기술 정보의 교환; 우리나라 산업발전과 관련된 중요과제의 토의 및 지식의 교환”이었다. 함인영 회장은 개회식 인사말에서 KSEA의 목적은 “재미한국과학기술자 상호간의 친목 협조와 국내 산업경제 및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 협조함”이라고 하였다.
학회가 끝난 후에 8월 5일부터 8월 9일까지 KSEA 회원들과 가족들이 함께 산업시찰 프로그램에 참가하였다. 시찰 기관 및 유적지는 현충사, 현대조선, 포항제철, 울산정유, 여수석유화학공단, 고리 원자력발전소, 금성사, 동명목재, 구미공업단지, 두 개의 시범 새마을, 경주 불국사/석굴암/첨성대 등이었다. 당시 방문했던 대부분의 회원들과 가족들은 현대화된 산업시설 및 시골 마을을 처음으로 체험하였거나 알게되었다고 하였다. 학회 이외의 기타 행사로 Science Club 주최 연회, 서울대총장 주최 연회, 부산대총장 주최 연회, 부산시장 주최 연회, 금성사 오찬 및 현대조선 오찬 등이 있었다.
학회 준비를 위하여 선발대로 떠난 20여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7월 28일 대한항공 747 전세기 편으로 LA에서 출발하여 Honolulu를 거쳐 7월 29일에 김포에 도착하였다. 대부분 여러해 만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었고, 한 부부는 22년만에 방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1952년 한국 전쟁 중에 떠난 후 처음 방문하는 것이었다. LA에서 747 한국 국적기를 탈 때부터 서울 도심으로 들어가며 한국의 발전상을 체험하는 것이었다.
당시 이 학술대회를 KSEA에서는 “모국방문 과학기술종합심포지움”이라 칭하였다. KSEA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한미학술대회를 매년 개최하였고 1999년부터는 학술대회 명칭을 “한미학술대회 (US-Korea Conference)”라 칭하였다. KSEA에서는 모든 대회의 횟수를 2019년에 결정하였는데 1974년에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심포지움을 제1회 한미학술대회로 명명하였다.
개회식에서 인사말하는 함인영 회장
“국가발전과 과학기술
--- 아시아적 빈곤과 질병들의 고질적인 생활조건을 깊히 안고있는 개발도상국에선 과학문명의 위기라는 말보다는, 과학기술의 혜택을 입어야하며 입어도 많이 입어야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빈곤의 문제를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
--- 더구나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하고 거기다 인구가 많은 작은 나라가 살길은 과학적 창조력에 기대는 방법밖에 없다. 당장 우리는 에네지 및 자원부족을 해결하면서 중화학공업을 발전시켜 나가야하는 현실적인 과제에 직면해있으며 단기 장기 할 것 없이 그 문제들의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앞으로 부강한 나라라는 말은 한낱 관념의 넋두리 속에서 맴돌게될 것이다.
그 면에서 본다면 국내외 과학자들의 과학 심포지움은 국가발전의 기틀을 튼튼히 세우고 시행착오 없이 그 길을 걸어가게끔 하는데 가장 중요한 발판를 만들것으로 믿는다 ---"
과학기술종합심포지움 생리학 세션 및 가족 관광